책에 관하여

<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leighto 2024. 10.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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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프,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투명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도 바보 같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더군. 춥고 사나운 기후와 사람들로 북적대는 문명화된 도시에서 말이야. 이 미친 실험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투명인간이 지닌 수많은 능력만을 꿈꾸었지. 그날 오후 접어들자. 극도의 절망감이 엄습하더군. 나는 인간이 욕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던 거야. 물론 투명성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지. 하지만 그것들을 얻는 순간 그것들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없게 되었어.

누구나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이 재미있는 상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도 더 전인 1897년에 이미 소설로서 구현됐다. 그것도 상당히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투명인간이 된다면 막연하게도 신나고, 재밌고, 좋은 장면들만 떠올린다. 하지만 잠시만 시선을 돌려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 어떤 것들이 불편할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사소한 것들에서조차 많은 단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자국이 남지 않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지면이 아닌 공중에서 부서질테니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눈도 마찬가지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눈이 허공에 쌓인다. 길을 걸을 땐 주위 모든 것에 신경 쓰며 걷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게 부딪히거나 차, 자전거가 나를 치고 갈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즉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예상보다 나쁜 것들 투성이 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처럼 실제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욕망하지만 실상은 다른 것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쉽게 돈, 명예, 권력. 이 정도가 떠오른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나로서는, 직접 경험하여 실상에 다가가보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할 것 같은 나로서는. 내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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